저자 스티븐 크레인
출판사 이담북스
스티븐 크레인이 살아있을 때는 직업이 그리스, 쿠바전에 참전한 종군기자라는 이유로 그의 작품들이 주목 받지 못했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으면 이 군으로 분류되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 <붉은 무공 훈장>, <난파선>은 미국 문단에 돌을 던졌다. 19세기 이후, 남북전쟁을 딛고 경제적으로 나날이 번성하는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던 ‘하면 된다! 꿈은 이루어진다!’ 정신에 부합하여 미국 문단도 개척 정신에 초점을 둔 고상한(?) 전통이 뿌리내리고 있던 반면에, 크레인의 소설은 급속한 산업화로 노동자와 빈민가에 대해 벌어지는 가혹한 불평등을, 여과없이 고발한 사실주의, 자연주의 문학의 선봉에 섰지만, 29세에 생을 마감함으로써 선구자의 영광을 누리지도 못했다.
그는 16살 때부터 신문에 기고하였고, 학문보다 실제로 체험하는 것을 좋아해 독학으로 단편을 많이 습작했다 하는데, 아마 삶에 대한 열의와 타고난 글재주가 있었던 듯 싶다. 여기 실린 7편의 소설 중 나는 <거리의 여인 메기>를 곱씹어 보고 싶다. 그의 나이 21세 때 충격적인 내용으로 출판이 어려워 자비로 출판한 처녀작이고 뉴욕 빈민가의 추한 현실을 냉정하게 묘사한 소설로써, 그가 미국 최초의 사회주의 작가로 자리매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속 성장에 심취, 자유의지를 강조하던 사회 분위기에 반하여, 크레인은 인간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며 인간의 삶은 그가 처한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 좌우된다고 역설한 작품이 <거리의 여인 메기>이다.
소설 도입부는 뉴욕 빈민가에서 자란 어린 메기의 오빠 지미가, 이웃 빈민가 아이들과 처절한 패싸움을 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알콜중독과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에서 태어난 빈민가의 아이들은 가진 것이 없기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만 드높이며 험악한 기 싸움을 허구헌날 벌이는데. 대낮부터 술에 취한 메기의 아버지는 패싸움을 하는 지미를 끌고 오며 말썽을 피운다고 두드려 패고, 집에 끌려와서는 생활고에 찌들려 반 괴물이 되어버린 어머니로부터 또 피 나게 맞는다. 그리고 반복되는 부모의 싸움… 어린 소녀 메기는 공포에 몸을 오들오들 떨며 오빠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젖먹이 아기인 동생을 업고 피신하기 일쑤이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와 어린 동생은 죽고, 지미는 거친 트럭 운전사가 되고, 메기는 봉제 공장의 여공으로 일하고, 어머니는 죽은 아버지보다 더한 술꾼이 되어 집안 분위기는 더 살벌하다. 그런데 진흙 속에서 꽃이 핀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메기는 착하고 어여쁜 아가씨로 성장해 가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나도 언젠가는 사람답게 살아갈 날이 올 거야, 멋진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따뜻한 가정을 일구고… 메기 앞에 깡패 오빠 지미의 연상 친구인 바텐더 피트가 나타나 메기를 유혹하며 영화관, 박물관, 공연장 등을 데리고 다니며 그녀의 환심을 산다. 메기는 문화 체험을 한 것 만으로도 눈물이 글썽글썽, 자신이 신분 상승을 한 것처럼 감동을 느끼며 피트와 함께 할 앞날에 온 희망을 거는데…
피트 역시 빈민가 출신으로 생존에 급급한 냉혈한이며 잘생긴 외모를 이용하여 여자를 밥 먹듯이 갈아치우는 바람둥이이다. 피트가 여자친구를 바꾸며 메기를 버리자, 집에 돌아온 메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엄마와 오빠의 냉대였다. 처녀를 잃은 너는 우리 집안의 수치이자 쓰레기다, 같이 살 수 없다! 자신들이 더한 쓰레기임을 모르고 메기를 내쫓는 가족, 이웃들도 합세하여 메기를 멸시한다. 피트에게 농락당하고 비정한 가족에게 내쫓기고 이웃에게까지 조롱당하는 메기는 결국 매춘부가 되어 밤거리를 넋 나간 듯 배회하다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여기까지 <뉴욕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거리의 여인 메기>의 줄거리이며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메기의 심정과 나의 심정이 교차했음에 소름이 돋았고(예를 들면 나도 가난한 환경에서 잘사는 집 아이들을 보면 그 아이들의 품질 좋은 옷과 고급스런 음식과 교양 있고 세련된 문화 생활을 부러워했으며 그 속내를 절대 나타내지 않으려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항상 마음은 그늘지고 나와 다른 계급으로 느껴지는 삶에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점), 메기는 진흙 속에 떨어진 별처럼 가족, 친구, 이웃, 누구에게나 숭고하고 도덕적인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피트와의 연애로 타락한 존재로 매도 당했다는 점이 분노스러워 욕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만든 사회에게, 19세기 후반의 산업화로 질주하던 뉴욕에게…
우리나라 1970년대 유신체재 하 산업화 초고속 시대, 전국 방방곡곡에서 서울로 상경해 공장으로 취직해서 버림받아 매춘부로 전락한 메기들, 지구 상의 산업화 가속을 거친 나라들 중 또 다른 메기의 존재와 아픔과 한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여기 스티븐 크레인이라는 짧게 살다 간 나이 어린 천재 작가가, 용기 있게 그 현실을 고발함으로써 100년 전에 이미 신호탄은 쏘아진 것이고, 우리의 선택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친 성장을 멈추고 사람을 제발 살피라는 전언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메기의 타락과 죽음은 메기의 내적 문제가 아니라 성장만을 추구하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사회의 외적 힘이 가해자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