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나쓰메 소세키

출판사 문예출판사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은 1906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일본 근대 문학 작가들 중, 가장 사랑 받는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정서가 쉽게 와 닿았으며 특히 소설 첫머리의 인상은 압도적이라 느꼈다. 주인공이 초등학교 시절, 2층 교실에서 머리를 내밀고 창밖을 보고 있는데 그 밑을 지나가는 학생이 ‘거기서 뛰어내리지는 못할 걸, 이 겁쟁이야!’ 한마디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뛰어내려 허리를 크게 다쳤는데,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자 ‘다음에는 허리를 삐지 않고 뛰어내리는 걸 보여드릴게요!’ 대답한, 무대포에 다혈질 성격의 소유자가 소설의 주인공 도련님이다.

여기서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의 가문은 명문가였으나 그가 태어났을 때는 메이지 유신을 전후한 대혼란기였고, 신군부가 장악한 상황에서 그의 가문은 몰락하였고, 8남매 중의 막내인 그는 양자로 보내지게 된다. 그의 아버지 50세, 어머니 40세를 넘긴 나이에서 그를 탐탁하게 여긴 이 아무도 없었고, 그는 커서도 양부와 친부 사이에서 갈등하며 방황하는 시기를 거치며 살아간다. 이 경험이 소설 <도련님>의 토대가 되지 않았나 싶고, 그가 국비로 영국으로 유학 갔다 와서 중학교 영어 교사로 있던 체험이 이 소설의 골자인 것 같다.

주인공 도련님은 모범생인 형에 비해, 말썽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으며 성장하지만,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형이 건네준 티끌만 한 유산을 마지막으로 형과도 거의 인연을 끊고 살아야 할 처지에 놓여있을 때, 그의 곁을 지키는 건 어릴 때부터 그를 도련님이라고 따랐던 늙은 하녀 ‘기요’ 밖에 없다. 기요는 도련님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애’ 라는 식으로 핍박할 때, ‘도련님은 올곧은 성격이어서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거예요, 입 발린 말을 싫어하는 게 그게 좋은 성격이예요’ 하며 한결같이 주인공을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었던 존재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지만 집도 절도 없는 외톨이 신세가 된 도련님과, 언젠가는 같이 뫼시며 사는 날이 오겠지 하는 희망으로 노년의 삶을 버티는 사람이다.

도련님은 문리 전문 학교를 가까스로 마치고 24살에 시코쿠 중학교의 수학 교사로 발령이 난다. 도쿄 출신의 도련님은 교직 생활을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뭘 안 할 수 없었기에(생존을 위해서) 시골 학교 선생님이 되기 위해 배를 타는 것으로부터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다. 배를 타고 한참 들어갈 정도의 한적한 섬 마을에서, 이제 막 근대화 바람이 불어, 물질적인 부와 권력에 의존해 살 길을 도모하는 일본 사회의 타락한 축소판이 펼쳐지고, 거기에 대항하는 도련님의 무모하고 고지식한 기개가 소설 전편에 흐르면서 긴장감과 통쾌함과 씁쓸함이 어우러져 혼을 쏙 뽑는다.

하숙집에서는 도시에서 온 도련님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학생들은 도련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칠판에 도시 촌놈의 행적을 낱낱이 적어 웃음거리로 만들고 당직하는 날 이부자리에 메뚜기 60마리를 풀어놓는 등, 놀려 먹을 궁리만 한다. 교사들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도련님의 시각에서 붙인 별명으로 등장한다. 교양 있는 척, 훌륭한 척만 하는 교장 너구리, 문학사로 낭만적인 척 하지만 뒤로는 기생 집에 드나들며 성실한 영어 선생의 약혼자를 가로채는 교활한 교감 빨간 셔츠, 빨간 셔츠의 비위를 맞추며 맘에 들지 않는 교사를 내치려 같이 음모를 꾸미는 미술 선생 떠벌이, 약혼자를 뺏기고 강제로 전근 가는 영어 선생 끝물 호박, 거칠지만 강직한 수학 주임 교사 거센 바람…

신참내기 도련님을 교장과 교감은 자기네 입맛에 맞게 구워 삶으려고 ‘월급을 올려준다, 말 잘 들으면 승진시켜 준다’ 갖은 수를 써보지만, 융통성 없고 대쪽 같은 성질로 주변 사람들을 골치 아프게 했던 도련님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결국 도련님과 또 다른 선생님, 정직한 거센 바람을 쫓아내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그 와중에 빨간 셔츠와 떠벌이의 정체를 깨닫게 된 도련님과 거센 바람의 복수극이 좌충우돌 부딪힌다. 섬 마을 학교는 이미 너구리와 빨간 셔츠의 권력이 장악했고, 도련님과 거센 바람은 매수된 언론으로부터 마을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학교 폭력을 주도한 파렴치한 교사로 매장된다.

궁지에 몰린 도련님과 거센 바람의 응징은 참 원시적인 것이었다. 둘이 며칠 간을 잠복했다가, 야밤에 몰래 기생 집에서 빠져나오는 빨간 셔츠와 떠벌이를 쫓아가 나무 밑으로 몰고 가서 준비한 계란으로 실컷 두들겨 패고 다음날 사표를 쓴다. 도련님은 학교를 떠났고 학교는 변한 것이 없다. 단지 두 명의 강직한 선생님을 지웠을 뿐… 도쿄에는 늙은 기요가 기다렸고, 선생님 생활을 너무 빨리 끝낸 것에 아랑곳 않고, 예전처럼 인자한 마음으로 도련님을 반겨준다. 도련님은 차량 기술자가 되어 기요와 함께 살지만 기요는 폐렴으로 죽고 소설은 끝난다.

도련님은 1년 남짓한 시골 학교 생활을 하면서 기요와의 편지가 낙이었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답답하게 자란 도련님에게 기요는 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신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와 급격하게 변화하는 일본의 세태에서 멀리 떨어져, 인간미와 인정으로 뭉쳐진 맑은 세상, 그것이 기요와 도련님의 세상이었고 기요가 죽고 난 다음 도련님은 어른이 되었을 것 같다. 꼰대스럽지만 맑은 전통을 지닌 어른으로 말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렇게 변화하는 일본을 유쾌한 방식으로 통렬하게 풍자했고 비판했다. 오랜만에 깔깔 웃으며 읽었고 허탈해 했던 이 소설, 정말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