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루이스 캐럴
출판사 더모스트북
지금까지도 나는 어릴 때 읽었었던 그 유명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줄거리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조끼를 입고 시계를 꺼내보며 늦을까 봐 황급히 뛰어가는 토끼를 뒤쫓아가다, 깊은 굴로 빠져 들어가며 시작되는 앨리스의 모험은, 동화를 읽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각인된 강렬한 첫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그 후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상황의 연속이라(앨리스의 키가 작아졌다 커졌다, 그리핀, 애벌레, 모자 장수, 미소만 있는 고양이, 가짜 거북과 같은 기묘한 동물들과 끝없고 답 없는 대화 나누기, 종이 카드 여왕이 주관하는 이상한 크로케 경기 참석, 이상한 재판 등)읽고 나면, 아무말 대잔치에 초대되었다가 이해가 딸려 멍해진 기분으로 퇴장 당한 손님 같아서 뒤숭숭 하다.
이 책은 수학자 루이스 캐럴에 의해 1856년에 출판 됐으며, 무려 150년 넘게 전세계 판타지의 고전으로 추앙 받고 있다. 그동안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 소설, 게임, 오페라 같은 문화 사업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빠질 수 없는 소재로 한 몫 했고, 아직도 기발하고 신기한 스토리로 사랑 받고 있다는데,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 걸까? 상상력 풍부한 어린 소녀가 평소에 했던 엉뚱한 생각들을 뒤섞어 버무려 놓은, 한 여름 낮의 개 꿈 같은데…
다시 한번 읽어보니, 예전에 보이지 않은 것들이 눈에 띈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폐증 환자처럼, 각자 자기만의 언어로 이야길 하고 있어 소통이 어렵지만, 자유로운 언어 유희가 느껴진다. 이건 영어를 아주 잘해서 원문으로 읽어야 더 확실하게 느껴질 것 같다. 번역판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여왕이나 공작 부인, 토끼, 고양이, 요리사, 카드 병정, 거북이, 그리핀, 담배 피는 애벌레, 쥐, 앨리스까지도 그냥 존재이지 차별이 없다.
우리는 뭘 자꾸 주입한다. 좋은 것, 나쁜 것, 예쁜 것, 못난 것, 가진 것, 덜 가진 것… 이렇게 분리 의식을 주입함으로써 상상력을 고갈시킨다. 길들여진 잣대로 보면 황당한 상상의 나열 같지만, 앨리스 꿈 속의 인물들은 선과 악이 없으며 나름 평등하고 진지하다. 특히 아직 세상의 잣대에 덜 길들여진 어린 앨리스의 태도가 돋보인다.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고, 상대방을 적당히 존중할 줄 알며, 쉽게 기죽지 않고 자신의 주장도 적당히 관철할 줄 아는 용기… 이런 순수한 태도가 앨리스의 모험에 동참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아직 때묻지 않은 어린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될 수 있으면 많이, 분리 의식이 주입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