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명길

출판사 양철북

1977년부터 2013년까지 일반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어느 선생님의 기록이 하나하나 들어와 날이 선 칼처럼 마음을 후벼 판다. 살얼음 같은 교육 현장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자세로 느물느물 피해 가는 날조된 미담이나 학생들 공부 성공 사례를 담은 에세이가 아닌 진솔한 글이라 더 맘에 들었다. 한국판 <죽은 시인의 사회>가 연상 된다.

12년 동안 학생들을 공부하는(수능을 목표로) 기계로만 길러내며, 친구를 경쟁 상대로만 여겨야 하는 비정한 교육 현실이, 내가 학교 다녔을 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더 심해졌다)는 사실이 분노와 절망을 끓게 해서 더 맘에 꽂힌 것 같다. 생존하려면, 경쟁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헛소리하지 말아라! 외치고 싶다. 잃는 것이 너무 많고 피 흘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넘쳐 난다.

김명길 교사는 항상 아이들 편이었다. 가난한 아이, 가출한 아이, 임신한 아이, 왕따당한 아이, 자살을 시도한 아이, 아무리 말려도 자퇴한 아이 등… 물론 수더분하고 모범적인 아이들도 있었지만, 김명길 교사는 가혹한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밀려나 가장 어두운 그늘 속에 사는 아이들을 향해 해바라기처럼 서있는 교사였고, 아이들을 숨 쉬지 못하게 하는 교육행정에 분노했으며, 교무실의 위선과 실적 위주(대학교엘 얼마나 보내느냐)의 권위적인 태도에 탄식했으며, 항상 힘없는 자기 자신을 탓하고 원망스러워했다.

학생들은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지쳐가고, 교사들은 정권이 바뀌면서 몇몇 이기적인 윗사람들의 변덕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고, 정작 학교의 본질인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흐려져 가고 과연 이 땅에 교육에 대한 희망이 있는지, 김명길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한 35년 간의 처절한 사랑의 기록으로 절규하듯 묻고 있는 것 같다. 저자 김명길 교사는 2013년도에 퇴임하여 그후론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 하는데, 참다운 대한민국 교사 생활의 고뇌는 도시와 연을 끊고 싶을 정도로 비감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우리 주위에 또 다른 김명길 선생님 존재의 오버랩을 느낀다. 거의 40년 전, 내가 고등학교 졸업반이었을 때,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는 거의 포기한 상태로 새벽까지 술집에서 근무하느라 등교하지 못했던 학생에게, 담임 선생님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자전거를 타고 학생의 집으로 가 학교로 끌고 오며 교실에서 자도 좋으니 출석은 해야 한다며,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지 사회로 나가 무시 당하지 않는다며 애쓰셨던 모습이나, 막내아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들이 제일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본인이 겪었던 독재 시절의 후유증을 들려주며 성적보다 인간성의 회복과 중시를 설파할 때, 극성 맞은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에(왜 수업 시간에 진도는 안 나가고 쓸데없는 얘기만 하냐) 못 이겨 학교를 관두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굴을 따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들…

저자 김명길 선생님은 늘 자기 자신의 힘없음(평교사여서 권력이 없었겠지)을 한탄했지만, 선생님이 미안해 할 때 아이들은 그 품에서 숨 쉴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춘기 시절을 보냈으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지옥 같은 학창 시절을 돌아다 볼 때, 행복이 뭔지, 인간의 존엄이 뭔지 깨닫게 해 준 선생님도 떠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시 책을 훑어보니, 선생님이 학기 말에 학생들에게 세심하게 쓴 편지가 유독 다가온다.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말썽 피우는 아이에게, 존재감이 없는 아이에게로 나눠 쓴 마지막 인사를 통해 오로지 아이들만을 향해있는 교사의 인격과 참다운 사랑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