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공선옥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1963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말도 안되는 구조의 가난한 시골 집을 전전긍긍하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도시로 올라와 하숙집 식당방, 공장 기숙사, 영구임대아파트 등 수많은 집을 평생 떠돌다 60이 다 될 무렵, 고향 근처 담양 수북이란 마을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공선옥 작가의 집 일대기, 살아가는 이야기 모음집이다.
이 책은 공선옥 작가가 평생 집을 찾아 떠돌다 마지막에 땅을 사고 전원주택을 짓고 안착했다는 성공기가 아니다. 공선옥 작가는 나와 4살 차이가 나는 언니 뻘이다. 내 아버지 고향이 순천이어서 공선옥 작가의 전라남도 말투와 구수한 정서가 낯설지 않으며,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나의 가난한 삶의 기억과 맞물려 묘한 서글픔에 빠지게 된다.
특히 그녀의 어린 시절을 읽다 보면, 나의 어린 시절과 별 반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구렁이가 달걀을 물어가던 초가집에서부터, 하수구에 실지렁이가 떼로 살던 시멘트 부로꾸집, 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아궁이에 물이 차는 부로꾸와 한옥이 섞인 뭣도 아닌 집, 기름 보일러를 놓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추운 방에서 일찌기 생을 마감해야 했던 부모님… 공선옥 작가의 삶은 이렇게 서러운 집에 대한 추억의 연속이다.
집의 형태는 달랐지만, 나도 어린 시절 생각하면 떠오르는 집에 대한 추억은 북향이라 햇빛이 안들어 축축한 천장, 번식하는 곰팡이, 축축한 부엌을 점령한 바퀴벌레, 가끔 녹슨 덫에 걸린 쥐, 모기가 들끓는 비좁은 마당 하수구 냄새, 변소 냄새, 바스라지기 일보 직전의 낡은 유리창틀이다. 오죽하면 중학교 가정 시간에 사는 집의 설계도를 그려오라는 숙제를 발표하는 시간, 재수 없게 걸려 최악의 집 설계도라고 개망신을 당했을까? 그 우아하신 가정 선생님은 얼마나 좋은 집에 사는진 모르겠지만, ‘이런 집에서는 훌륭한 사람이 날 수 가 없다’는 폭언까지 날렸었다.
나는 행복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은 북향의 햇빛 들지 않는 남루한 집보다, 행복을 쫓지 않고 너무나 가난해 생존이 급급했던 우리 아버지의 근엄함과 체벌이었다. 아버지는 돈이 없어 가장 허름한 집을 구입하셨지만, 종로통에서 자식들을 교육시킬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계셨었다. 자식들을 잘 공부시켜 보란 듯이 일어나고픈 야망이 있으셨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 나오면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집은 나에게 행복의 터가 아니라 비겁하게 새우잠을 자는 곳이었다. 그래도 재워주고 먹여준 부모님의 공로를 외면한 탓일까? 집에 대한 어두운 기억이라도, 내 것이라고 품지 못한 좁은 마음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월세집을 전전긍긍하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공선옥 작가는 집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꿈으로만 꾸었는데, 현실에서는 가져보지 못한 가족들의 밥상 머리,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건강하고 늠름한 모습, 하얀 모시 수건을 두른 어머니의 젊은 모습에, 꿈에서 깨어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가난은 그런 것이다. 행복에 대한 열망은 끓어 넘치는데 알 수 없는 벽에 부딪혀, 튕겨져 나가 영혼이 젖도록 서럽게 우는 것… 제목 <춥고 더운 우리 집>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의 상징적인 표현 아닐까 생각한다. 조망 좋고 방향 좋고, 튼튼한 건축 구조를 가진 부자들의 집은 경험할 수 없는, 겨울이면 웃풍에 한기가 돌고, 여름이면 땡볕에 맥을 못추는 집에서, 오늘도 가난한 사람들의 고난하고 외롭고 서러운 삶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