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문열 엮음
출판사 무블출판사
죽음을 주제로 선택한 소설 중에서, 이문열 작가가 추천하는 세계 명작 모음집으로, 그가 젊고 순수했던 문학인이었을 때 심취했던 문학 세계와 방대한 독서량을 맘껏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집은 개정판인데 나는 오래전에 구판을 읽었었고, 여기에 새로운 소설들이 첨가되었다. 톨스토이, 마르셀 프루스트,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은 너무나 유명한 작가들이라 오랜만에 읽은 작품들도 그리 큰 감회는 없었다.
그러나 미국 작가들… 잭 런던, 셔우드 앤더슨은 다시 읽어도 심장의 박동이 빨라진다. 스티븐 크레인의 발견은 큰 수확이었다. 이 세 작가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학교에서 뛰쳐나와 독학으로 문학 수업을 했으며, 미국 내에서는 사회주의 성향을 띈 작가로 자리매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작가들의 생이 고난으로 점철되니 당연, 글이 입체적이고 생생하다. 스티븐 크레인의 <난파선>, 잭 런던의 <불 지피기>, 셔우드 앤더슨의 <숲 속의 죽음>… 모두 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버림받고 소외된 약자들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다.
특히 잭 런던의 <불 지피기>와 셔우드 앤더슨의 <숲 속의 죽음>은 가히 수작이라 느낀다. 영하 75도 넘는 추위 속에서 한 사나이(광부로 추정되는)가 산맥을 횡단하며 불을 피우려다 얼어 죽어가는 이야기와, 어릴 때는 남자 주인의 학대에 시달리고 커서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개망나니 아들까지…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사람들과 동물들까지 먹여 살리려 한시도 쉬지 못했던 노파가, 추운 겨울, 먹을 것을 얻어오다가 눈 쌓인 숲 속에서 잠이 들며 고단한 삶을 마감한다는 이야기는, 평생 불행한 삶보다 차라리 죽음이 더 편안함을 주는 삶이 이해되어 소름이 돋는다.
나에게는 아직 <죽음의 미학>이란 수식어가 와 닿지는 않는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죽음의 고통보다는 내가 죽어 없어지고 난 뒤에, 해는 여전히 뜰 것이고,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전히 돌아갈 것이지만, 남겨진 이들의 슬픔이 공포에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죽음을 인정하게 될 만큼 나이가 든 것을 느낀다. 아버지의 병고에 따른 죽음, 큰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의 자살로 인한 죽음, 작은아들의 우울증으로 하루에도 몇 번을 죽었다 깼다 하는 아찔한 고통을 오랜 세월 경험한 탓일까?
또 생활고에 시달리면, 이렇게 강자와 약자가 극명하게 구분되는 세상에서(자본으로 인한), 이 세상이 혁명으로 뒤집히지 않으면 차라리 다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라는 삐뚠 생각을 품고 살았으니, 오히려 죽음은 그렇게 무섭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삶이 아노미 상태인 게 두려운 지도 모른다. <죽음의 미학>에서 한결같이 전하는 작가들의 메시지가 나는 성서처럼 들린다. 인생에서는 너무 큰 고통도 약이 될 때가 있으며, 살아있을 때 그냥 온몸으로 느껴라, 삶과 죽음은 하나로 붙어있으니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