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잭 런던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두세 시간 간격으로 폭염경보가 핸드폰 문자 메세지로 울리던 8월 초의 주말, 나는 버스에서 내려 고깃국 꽝꽝 얼린 것을 비닐봉지에 나누어 양손에 들고 친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 전 시부모 생신 때 대구에 내려갔다가 혼자 사시는 친정 엄마 가져다 드리라고 시어머니께서 싸주신 고깃국을 가져가는 길은, 요즘 따라 변덕 같은 한여름 기온을 이기지 못하고 기력이 쇠해 살이 부쩍 빠지신 우리 엄마, 어서 고깃국을 먹여 기운을 되찾게 해드려야지 하는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얄밉게 무더위가 극성을 떨었다.

사직단에서 내려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야 하는데 그늘 한 점 없는 보도블럭은 이때 만을 기다렸다 하는 듯이 사납게 이글거리고, 체감 온도 40도, 습도가 높아 한증막을 헤매고 다니는 듯한 기분에 안경은 희뿌연 상태로 계속 흘러내리고 속이 울렁울렁, 머리는 어질어질, 땡볕이 닿자마자 비닐봉지가 흐물거리며 양손의 무게감이 더해 어깨에 맨 배낭과 함께 그야말로 몸은 천근만근이 되어 그 짧은 거리를 걷는 시간에도 엉엉 울고만 싶었다.

그러나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덥다고, 엄마한테 가져갈 고깃국 선물이 무겁다고 울 수는 없는 일, 최근에 강렬하게 읽었던 잭 런던의 <불을 지피다>라는 소설을 본능처럼 떠올렸다. 그래도 알래스카 클론다이크에서 불을 피우다 영하 60도의 혹한에서 죽는 것보다 훨씬 나은 환경이 아닌가? 위로하며 잭 런던의 소설을 생각했다. <불을 지피다>라는 잭 런던의 소설집에는 11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1부는 <사회적인 이야기>, 2부는 <우화적인 이야기>, 3부는 알래스카 금광 지대를 다룬 <클론다이크 이야기>로 나눠져 있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삶의 끝자락에 놓인 사람들이다.

한물 간 복서 이야기 <스테이크 한 장>, 산업 사회에서 기계처럼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소년 <배교자>, 사리 판단이 제멋대로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한 죽음을 당하는 중국인 노예의 이야기 <시나고>, 멕시코 혁명을 위해 힘과 부패로 얼룩진 링에 오르는 리베라의 이야기 <멕시칸>, 보석 욕심에 파멸하는 도둑들의 이야기 <그냥 고기>, 좌초된 배에서 어른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프란시스 스페이트호>, 자신이 살려 준 적에 의해서 죽게 되는 군인의 이야기 <전쟁>, 원시 부족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강자의 힘>,

자손들의 삶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른바 ‘고려장’을 닮은 극지방 부족 노인의 이야기 <생의 법칙>, 영하 60도의 혹한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을 치지만 자연의 위엄 앞에서 좌절되는 청년의 이야기 <불을 지피다>, 극지방에서 늑대와 사투를 벌이며 고통스러운 생명에 집착을 보이는 사나이의 이야기 <생에의 애착>… 숨 가쁘게 읽어내려 한 편 한 편, 뇌리에 꽂히고 심장에 피 멍이 든 것 같다. 해도 해도 너무 치열하다. 잭 런던이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치열함이 나는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그의 글은 너무 마초적이다 못해 가학적이다. 그는 그가 겪었던 말도 안되는 고난의 일생에, 글로써 앙갚음을 하려는 기세로 글을 썼으나, 결국 대중 문학의 인기와 선봉에 섰으니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잭 런던의 디스토피아 소설 <붉은 전염병>을 소개할 적에, 작품의 내용보다는 잭 런던의 입체적인 삶에 심취해 그의 일생(11세에 신문 배달, 얼음 마차 조수, 스스로를 일하는 짐승이라 칭했으며, 14세에 연어 통조림 공장에서 하루 18시간에서 20시간 노동, 16세에 굴 양식장 해적, 17세 물개잡이 어선의 선원 생활, 18세에는 미국과 캐나다를 떠도는 부랑자 생활, 19세 고등학교 입학, 20세 사회주의 노동당에 입당, 3개월의 벼락공부로 대학교에 입학, 21세 골드러쉬에 휩쓸려 클론다이크로 모험을 떠나고, 22세 클론다이크에서 금은 고사하고 괴혈병을 얻어 고생하다가 귀향하여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드디어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다.)을 구구절절 소개했던 게 생생하다.

그 유명한 <동물농장>을 쓴 조지 오웰은 잭 런던의 단편 소설 모음집에 서문을 실을 정도로 잭의 영향을 받은 작가임에도 이렇게 말한다. ‘잭 런던의 작품은 기복과 편차가 심해 작품성이 오락가락하지만, 절판되기엔 너무 아까운 책을 여섯 권은 남긴 것 같다.’ 그러나 잭 런던은 조지오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고, 40살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장편 19편, 단편 200여 편, 논픽션 500여 편을 쏟아낸 그야말로 혈혈왕성한 다작의 작가였다. 잭 런던의 문학 인생은 그 누구보다 꽉 차고 굵었다. 조지 오웰이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어마무시하게 글을 썼던 사람이었다.

잭 런던의 유년과 청년기의 삶은 안 해 본 일이 없고 안 해 본 고생이 없을 정도로 그 어떤 작가와의 고난과도 뒤지지 않기에, 이런 작가의 삶의 배경 자체가 매번 생존 여부가 달린 사각의 링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극지방에서 불을 지피려다 동상이 와 온몸이 마비가 되는 링, 공장에서 ‘더 일하는 기계가 되고 싶지 않아요’ 라고 외치는 링, 난파된 배에서 굶주림에 쩔어 어린 소년의 피를 뽑아 먹으려 달려드는 어른들을 향해 ‘이건 살인이예요, 나에겐 부양할 병든 어머니가 있어요! 이것은 죄입니다!’ 라고 한 맺혀 외치는 링… 잭 런던과 그의 작품을 얘기하면 고통의 범위도 넓어지기 때문에 오늘은 이쯤에서 맺고 싶고, 녹아내린 고깃국을 무사히 나를 수 있었던 걸 위안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