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넬리 블라이

출판사 유페이퍼

이 이야기는 1800년대 말, 미국 여기자 넬리 블라이의 탐사 체험을 토대로 한 생생한 르뽀다. 뉴욕시 블랙웰스 섬에는 악명 높은 정신병원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직원과 간호사들의 환자들에 대한 악행으로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고 한다. 넬리는 물증이 없어 베일에 쌓인 정신병원에, 10일간 잠입해 환자인 척 연기를 하면서 병원의 실태를 파헤쳐 세상 밖으로 낱낱이 고발한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여성이 신문 기자가 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며, 기자가 되더라도 패션, 미용, 정원 가꾸기 정도의 기사를 올릴 수 있었다니, 넬리 블라이의 탐사 체험과 용기가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넬리 블라이라는 이름은 본격적인 기자 활동을 통해서 얻게 된 필명이지만, 150년 전 미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타파하는데 공헌한, 최초의 여성 저널리스트로써 여성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인물로, 나도 필명인 그 이름을 기억하고자 한다.

넬리 블라이는 펜실바니아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혼했으나 양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3년 만에 이혼했으며, 14명의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10대 때 일찍이 도시로 나와 직업 훈련을 받았지만 정규교육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남다른 책임감과 글쓰기라는 재능이 있었다. 16살 나이에 대도시의 유명한 일간지에 실린 ‘여성은 요리와 육아에만 소질이 있다.’ 라는 사설에 반박 글을 달아 신문사로 보냈고, 이를 눈여겨본 편집장이 그녀를 정식 기자로 채용했다고 한다.

넬리의 반박 글이 아무리 패기 어린 비판의 글이었다 하더라도, 여성의 역할이 집안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 존재로만 잣대 삼던 시대에, 그래도 언론의 역할이 편집장의 눈썰미를 통해서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넬리는 기자가 된 후에도 신문사가 요구하는 입맛에 맞지 않게 이혼법이나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 등, 사회적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을 썼고, 정신병원에 최초의 탐사 기자로써 잠입한 사실이 그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는다.

탐사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으며, 72일 동안 최단 시간의 세계 일주, 최초의 여성 종군 기자, 여성과 미망인,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일에 사력을 다하는 등 58세에 폐렴으로 세상을 뜨기까지, 그의 경력은 어마하다. 블랙웰스 섬 정신병원의 끔찍한 현실을 고발한 것이 그녀의 나이 23세 때였다. 1800년대 후기 정신병원은 너무 폐쇄적인 곳이어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처음 신문사로부터 다소 위험한 요청을 받고도 그녀는 망설임 없이 미친 척하는 연기에 돌입했다고 한다.

당시 정신병자는 주위 사람들의 신고가 있으면, 경찰이 끌고 가서 재판관 앞에 판결을 받은 다음, 여러 명의 의사들의 진단으로 결정이 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그곳에 정신이상자들만 들어가는 곳이 아니고, 너무 가난해서 버려진 사람들,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이 포기한 사람들, 거리의 부랑아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도 이곳에 보내진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고립된 약자들은 다 이곳으로 전출되었던 셈이다.

넬리는 어찌어찌 과격하게 정신병자 행세를 해서 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문제는 병원에 들어가고 난 다음이었다. 소문보다 더 끔찍한 환경, 썩은 과일, 냄새나는 감자와 스프, 조악한 식사부터 너무나 불결한 위생 상태, 여성들을 더러운 욕조에 물을 갈지 않고 한 사람씩 강제로 입수시키며, 그것도 얼음물에… 반항하면 힘센 간호사들의 폭설과 구타가 기다리고 있고, 의사들의 부실 진단과 나 몰라라 행태는 가관이었다. 넬리는 의사에게 핏대를 올리며 항의해 보았으나 돌아오는 건 더 중증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옮겨지는 것,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의 폭언에 순종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은 환자들은 더 망가지고 있었다.

억지로 투여되는 모르핀과 진통제는 환자들의 몸을 더 안 좋아지게 했으며, 넬리도 반항하다 주사를 강제로 투입한다는 협박에 약을 먹는 척 하면서, 그들이 나간 다음 토해내며 버텼던 10일간의 체험에 두손 두발 다 들게 된다. 여기 신문사가 공신력 있는 신문사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넬리는 나올 수 없는 운명에 처해있을 수도 있었지 싶다. 그러니까 넬리가 원한 건 10일이 아니라 버틸 수 있었던 기간이 10일이었을 뿐…

온갖 고초를 겪은 넬리는 신문사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와 뉴욕월드지에 <정신병원에서의 10일>이라는 특집 기사를 싣고,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으로 정부는 정신 병동 조사에 착수, 학대와 관련된 직원들은 모두 죗값을 치루게 되고, 뉴욕시는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복지 예산을 연간 100만 달러로 증액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게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2억 7000천 만 원, 130년 전에 금액이었다. 넬리는 먼저 정신병원에 두고 온 동료들(?), 안타까운 사정으로 정신병원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었던, 너무나 멀쩡하고 인간적인 여성들이 정신병원에 있으면서 계속 파멸의 길로 가는 것을 보면서 심각한 부채의식에 시달렸을 것 같다.

나는 150년 전의 그녀가 누구보다 용감한 삶을 살았을 것임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가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인가에는 의기소침해진다.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150년 전의 미국 기자 넬리블라이, 미국에는 그의 날도 기념하여 해마다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하는데, 우리나라는 언론이 썩어서 넬리 블라이같은 정칙적인 초대 기자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일까? 하긴 나도 언론을 신뢰하지 못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래도 150년 전 미국 사회의 기자였던 넬리 블라이를 통해 참 언론인을 제대로 각인하고, 앞으로 나올 참 언론인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일까? 사실 <정신병원에 잠입한 10일>은 문학과 거리가 먼 르뽀이지만, 소개하고 싶었다. 그런데 전자책 출판사 유페이퍼, 이렇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출판했지만, 몇 군데 오타가 좀 거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