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오덕
출판사 양철북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글쓰기 학원에서 처음 아이들을 가르칠 때,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갖게 할까 고민하던 중, 그 유명한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지침서는 큰 힘이 되었었다. 좋은 글은 유식한 글, 많이 배운 사람의 글이 아니라, 쉬운 말, 정직한 말로 쓴 글,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린이도 농부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 있는 그대로 겪은 거짓 없는 글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한다는 그의 신념은, 그 시절 어중떠중한 혼탁함에 쩌들어있던 나의 문학관을 분쇄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이오덕 선생님의 단순 명료한 철학에 눈을 뜨고 심기일전하여,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해나갔던 기억, 칭찬받기 위해 쓰는 일기가 아닌 오로지 그들만의 경험을 글로 써내려 가려고 열의에 찼던 아이들의 반짝반짝했던 눈망울이 기억나는데… 그래서 어릴 때 글쓰기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확신하고 있는데, 하물며 동화를 쓰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안데르센이 덴마크 동화의 아버지라면 우리나라는 단연코 권정생 작가라고 생각한다.
1970년대, 왕자와 공주가 판을 치는 동화계에 혁명을 일으킨 권정생의 작품들, <무명저고리와 엄마>,<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 가장 약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사랑을 주옥같은 동화로 남긴 권정생의 삶은, 그가 쓴 동화보다 외롭고 서러웠기에(찾아보면 나온다) 더 아프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나는 이오덕과 권정생의 관계가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편지 모음집을 통해, 피보다 진한 우정의 관계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오덕과 권정생의 주고받는 편지는 첫 만남부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1973년 추운 겨울, 시골 초등학교 평교사였던 이오덕은 신춘문예 동화작품에 당선된 <무명저고리와 엄마>를 읽고 감명받아, 동화 작가 권정생을 찾아 안동 일직으로 향한다. 일직교회 문간방에 종지기로 근무하고 있던 권정생은, 배우지 못했고 가족이 없었으며 폐결핵을 앓고 있던 환자로 37kg의 부실한 몸으로 이오덕을 맞이한다. 그의 남루한 환경과 병약한 몸에 충격받은 이오덕은 그도 가난한 처지에서 권정생을 힘닿는데까지 도우려하고, 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려고 모든 인맥을 동원해 전국 팔도로 뛰어다닌다. 이러한 이오덕의 노력에 힘입어 권정생은 오줌주머니를 차고 극심한 병의 고통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동화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오덕이 쓴 편지에서 ‘선생님, 겨울 오기 전에 약값하고 연탄 들여 놓으세요, 오천 원 부칩니다.’라든지, 권정생이 쓴 ‘선생님, 앞으로도 슬픈 동화만 쓰렵니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갈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라는 구절만 읽어도 나는 심장이 아려왔다. 이오덕이 죽기 전에 쓴 시와 권정생의 유언장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꺼이꺼이 터졌다. 그리고 아동문학사에 큰 별로 남은 두 분의 순수한 삶의 역정이 푸대접을 받는 사회인 것만 같아 분노가 일었다. 이 세상에 사람들 대부분이, 에고에 갇혀 이기적인 욕망을 쫓아가는데, 굳이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가시밭길을 걸어간 성자들의 삶에 관심이 있을까? 그들의 편지가 아무리 아름답고 슬프다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