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공선옥
출판사 위시라이프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에 나오는 무려 28가지의 먹거리들(쑥, 머위, 가지, 호박, 오이, 부추, 토란, 더덕, 메밀, 방아잎, 고들빼기, 시래기 등등)은, 그 이름 하나하나가 신성한 주문처럼 느껴진다. 몇 해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가 옥상과 대문 앞에 텃밭을 키우시는데, 가지나 호박, 깻잎, 상추들을 얻어다 먹어서 그런지, 그 느낌이 더한 것 같다.
갖은 양념과 화학 조미료로 쩐 음식보다, 깨끗하고 속이 편한 먹거리를 틔우는 텃밭 농사의 가치와 어머니의 고단한 노력을 알기에, 공선옥 작가의 음식 이야기는 반가웠다. 얼마나 찰진 언어로 어린 시절에 먹었던 음식 이야기를 풀어내었을까 기대되었고, 자연에서 본능처럼 나물과 푸성귀를 캐 먹는 어린 여자아이들의 삶이 정겨우면서도 이상하게 슬펐다.
‘비 오는 날, 토란 잎으로 우산을 써 봤는가?’ 하는 구절을 읽고서야, 어머니 옥상 텃밭에 거대한 토란 잎이 우산처럼 휘어져 텃밭 가장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새로이 발견했다. 어머니가 ‘이거는 머위~’, ‘이거는 명월초~’, ‘이거는 질경이~’ 하실 때도, 이파리가 비슷해서(내 눈에는) 건성으로 ‘예 예~’하고, 받아 갈 야채에만 눈독을 들였었는데… 공선옥의 먹거리들은 사실, 모든 게 밥이나 다름이 없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가난해서 농사지을 땅이 없어 쌀 농사를 짓지 못하는 대신, 어머니를 따라 무, 배추 농사를 짓고, 일 년 내내 자연에서 솟아나는 식물들을 채집해, 씻고 다듬고 쪄 먹고 지져 먹고 무쳐 먹고 했는데, 정작 간절히 먹고 싶었던 것은 따뜻한 미역국과 찰진 쌀밥이었다고 한다. 쌀밥과 고기 한 점, 고등어, 갈치 한 토막도 허락지 않았던 가정 형편은, 자연이 내려준 야채 뿌리만으로는, 한창 자라날 성장기의 어린 공선옥에게는 먹어도 먹어도 성이 차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나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소풍 가는 날이 싫었었고, 먹을 것이 부족해 알아서 입이 짧아졌지. 예민하고 짜증 잘 내고 두통을 잘 앓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나는, 흙과 물과 공기와 햇빛과, 별빛과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소리와 대나무 숲의 바람과, 끝까지 자식을 먹여 살리고자 고군분투했던 어머니의 눈물이 배인 음식을 먹고 내가 자랐다는 공선옥 작가의 회고 앞에 막막해진다.
요즘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만을 고집하는 음식 문화와 소비 문화가 얄밉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며, 기후 변화에 여름 물난리에, 폭등하는 밥상 물가 때문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울 때, 어머니의 텃밭에서 수확한 올여름 마지막 가지와 호박과 비름 나물, 깻잎들은, 해 나면 해 난다고 두근거리고 밤 오면 밤 온다고 두근대는 자연의 아이 마음이 된 것 같아 고마울 따름이다.